들어가며
성격검사나 감정 검사의 문항 앞에서 손가락이 멈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확신이 서지 않고, 고르고 나서도 왠지 조금 꾸민 것 같은 기분이 남습니다. 이런 망설임은 성의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고하는 방식의 검사가 처음부터 안고 있는 성질입니다.
이 글은 자기보고 검사에서 솔직한 답이 왜 생각보다 어려운지를 몇 가지 갈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좋게 보이고 싶은 마음, 이상과 현실이 섞이는 순간, 내용과 상관없이 생기는 응답 습관, 기억과 자기 인식의 한계를 차례로 살펴본 뒤, 답을 고를 때 쓸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정리합니다. 어느 것도 응답자를 탓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답이 흔들리는 자리를 미리 알아 두자는 이야기입니다.
나를 재는 사람과 재어지는 사람이 같다는 문제
자기보고 검사는 말 그대로 내가 나에 대해 보고하는 방식입니다. 키나 몸무게는 저울이 재어 주지만, 성격이나 감정 습관은 겉으로 재기 어려워서 본인의 대답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응답자는 측정 대상이면서 동시에 측정 도구 역할까지 맡게 됩니다.
도구가 대상과 같으면 흔들림이 생기기 쉽습니다. 오늘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면 나를 낮게 보고, 칭찬을 들은 날에는 조금 너그럽게 봅니다. 저울이 그날그날 영점을 스스로 맞추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자기보고가 쓸모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고, 그래서 성격과 정서 연구의 상당 부분이 이 방식을 바탕으로 쌓여 왔습니다. 다만 답이 어디서 흔들리는지 알고 있으면 결과를 훨씬 정확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좋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두 겹으로 작동한다
심리 측정에서는 바람직해 보이는 쪽으로 답이 기우는 현상을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친절하다, 책임감이 있다, 감정을 잘 다스린다처럼 누가 봐도 좋은 특성을 묻는 문항일수록 이 힘이 크게 작용합니다. 아무도 내 답을 보지 않는 온라인 검사에서도 이 경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편향을 크게 두 겹으로 나누어 봅니다. 하나는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의식해 의도적으로 답을 다듬는 인상 관리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실제보다 긍정적으로 믿는 자기기만적 향상입니다. 앞의 것은 상황이 바뀌면 줄어들지만, 뒤의 것은 본인이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어서 알아차리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답하겠다고 마음먹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상 관리는 의지로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어도, 자기기만적 향상은 내가 믿는 나 자체에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생각보다 좋게 나왔을 때 한 번쯤 그 점수가 바라는 나에 가까운지 실제 나에 가까운지 되물어 볼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되고 싶은 나와 지금의 나가 섞이는 순간
많은 사람이 문항을 읽으며 무의식중에 질문을 바꿔 읽습니다. 나는 실제로 이렇게 행동하는가를 묻는 문항을,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은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요즘 운동을 결심한 사람은 꾸준함을 묻는 문항에 결심의 무게까지 실어 답하기 쉽습니다.
역할에 따라 다른 나가 떠오르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회사에서는 꼼꼼하지만 집에서는 느슨하고, 친구들 앞에서는 말이 많지만 낯선 모임에서는 조용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문항이 어느 장면을 가리키는지 정해 주지 않으면 응답자는 그때그때 떠오른 장면을 기준으로 답하게 되고, 그 결과 같은 사람이라도 답의 기준이 문항마다 달라집니다.
이 어긋남은 정직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원래 여러 장면에서 조금씩 다르게 행동하고, 검사는 그 다양한 모습을 하나의 점수로 요약하려 합니다. 답하기 전에 어떤 장면을 기준으로 삼을지 스스로 정해 두면 이런 흔들림을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내용과 상관없이 생기는 응답 습관
문항의 내용과 상관없이 답의 모양을 바꾸는 습관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묵종 경향으로, 질문이 무엇이든 그렇다 쪽으로 기우는 성향을 말합니다. 반대로 매우 그렇다나 전혀 아니다 같은 양 끝만 고르는 사람도 있고, 판단이 서지 않으면 늘 가운데를 고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습관은 성격과 별개로 점수를 위아래로 밀어냅니다. 같은 정도의 외향성을 가진 두 사람이라도 한 사람은 양 끝을 즐겨 쓰고 다른 사람은 가운데를 즐겨 쓰면 점수 차이가 꽤 벌어질 수 있습니다. 검사를 만드는 쪽에서 같은 특성을 반대 방향으로 묻는 문항을 섞는 것도 이런 치우침을 어느 정도 상쇄하기 위해서입니다.
피로도 습관을 키웁니다. 문항이 길게 이어지면 뒤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앞서 고른 답과 비슷한 답을 반복해서 고르기 쉬워집니다. 집중이 흐트러졌다고 느껴질 때 잠시 쉬었다가 이어서 답하는 것만으로도 결과의 질이 달라집니다.
기억과 자기 인식에는 빈틈이 있다
자기보고 문항은 대부분 평소에 어떤지를 묻지만, 사람의 기억은 평소를 고르게 저장하지 않습니다. 최근의 일, 감정이 강하게 실린 일, 자주 떠올린 일이 실제보다 크게 기억되고, 무난하게 지나간 수많은 날은 쉽게 잊힙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크게 다툰 사람은 평소보다 자신을 덜 온화한 사람으로 답하기 쉽습니다.
자기 인식에도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말투가 날카롭다거나 대화 중에 말을 자주 끊는다는 것처럼 남들은 금방 알아채는 특징을 본인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흔합니다. 성격 연구에서 본인 평정과 가까운 사람의 평정을 함께 모으는 이유도 두 시각이 서로 다른 부분을 비추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다루는 영역에서는 이 빈틈이 특히 두드러집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읽는지 스스로 판단하려면 결국 내가 놓친 신호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데, 놓친 신호는 정의상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감정 관련 검사에서 자기보고 문항 외에 상황을 제시하는 문항을 함께 쓰는 이유도 이런 한계를 보완하려는 데 있습니다.
조금 더 나다운 답을 고르는 방법
완벽하게 솔직한 답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하지만, 답의 흔들림을 줄이는 방법은 있습니다. 핵심은 마음먹기보다 기준을 미리 정해 두는 데 있습니다. 아래 방법 가운데 몇 가지만 써도 결과가 나를 설명하는 힘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 답하기 전에 기준이 될 장면을 정합니다. 일하는 나인지, 쉬는 날의 나인지 하나로 정해 두면 문항마다 기준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 되고 싶은 모습 대신 지난 몇 달 동안 실제로 반복한 행동을 떠올립니다. 특정한 하루가 아니라 여러 날의 평균을 그려 보는 것이 요령입니다.
- 가까운 사람이라면 이 문항에 나를 어떻게 답할지 상상해 봅니다. 내 답과 크게 다르다면 그 차이 자체가 생각해 볼 거리입니다.
- 첫 느낌을 따르되, 고른 답이 유난히 듣기 좋은 쪽이라면 한 번만 다시 읽어 봅니다.
- 지치거나 감정이 크게 흔들린 날은 피하고, 집중이 흐트러지면 잠시 쉬었다가 이어서 답합니다.
정리
- 자기보고 검사에서 답이 흔들리는 것은 성의 부족이 아니라 나를 재는 사람과 재어지는 사람이 같기 때문에 생기는 성질입니다.
- 좋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는 의식적인 인상 관리와 스스로도 모르는 자기기만적 향상의 두 겹이 있습니다.
- 그렇다 쪽으로 기울기, 양 끝이나 가운데만 고르기, 피로로 인한 반복 응답처럼 내용과 상관없는 습관도 점수를 움직입니다.
- 기준이 될 장면을 정하고 실제로 반복한 행동을 떠올리면 결과가 나를 설명하는 힘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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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좋게 보이려고 답했다면 결과를 다시 받아야 하나요.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어느 문항에서 그랬는지 떠오른다면 시간을 두고 다시 답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두 결과를 나란히 놓고 어느 영역이 크게 달라졌는지 보면, 내가 어떤 모습을 특히 지키고 싶어 하는지도 함께 알 수 있습니다.
중간 답을 많이 고르면 결과가 부정확해지나요.
정말로 상황에 따라 양쪽을 오가는 사람이라면 중간 답이 정확한 답입니다. 다만 판단을 미루려고 습관처럼 가운데를 고른다면 실제보다 밋밋한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기우는 쪽이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편이 좋습니다.
남이 대신 답해 주면 더 정확한가요.
더 정확하다기보다 다른 면을 비춥니다. 다른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잘 보지만 속마음이나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은 알기 어렵습니다. 본인의 답과 가까운 사람의 시각을 함께 놓고 보는 것이 가장 균형 잡힌 방법입니다.
참고 문헌
- Crowne, D. P., & Marlowe, D. (1960). A new scale of social desirability independent of psychopathology. Journal of Consulting Psychology, 24(4), 349-354.
- Paulhus, D. L. (1984). Two-component models of socially desirable respond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46(3), 598-609.